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지 H. W. 부시 (문단 편집) === 부통령 재직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69px-Official_portrait_of_President_Reagan_and_Vice_President_Bush_1981.jpg]]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조지 H. W. 부시 당시 부통령(오른쪽, [[1981년]]) [[1981년]]부터 [[1989년]]까지 [[로널드 레이건]] 정권의 부통령을 지냈다. 이전의 [[리처드 닉슨]]과 훗날의 [[앨 고어]]가 그랬듯 그의 대통령 선거는 부통령 선거 때에 비해서 매우 힘들었다. 이 시기 사양길로 접어들 뻔했던 미국의 석유산업을 살리기도 했다. 1985년 하반기부터 1986년 상반기까지 영국과 사우디간의 석유전쟁이 벌어지면서 유가가 폭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는데 원유가격이 배럴당 20달러 후반대에서 10달러 아래로 떨어지자 미국 경제전반적으로 보았을때 유가하락으로 인해 소비자들은 자동차를 마음껏 타고 다닐 수 있었고 업체들이 부담하는 물류비도 싸게 변해서 미국 경제 전반적으로는 이득이기는 했는데, 미국의 석유업체들이나 석유생산으로 먹고살던 텍사스와 알래스카 석유업체 상당수가 파산위기에 내몰리게 되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자유시장 논리에 별다른 조치를 취할려고 하지 않았지만, 조지 부시 부통령은 석유업체가 대거 도산하면 도산하는 대로 문제가 있는데다가 석유 소비량이 급증할 경우엔 에너지 안보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사우디를 적절하게 압박하고 석유값 하락으로 위기에 처한 OPEC내 여러 나라들과도 의견 조율로 감산합의안을 통과시키게 만들었고 덕택에 석유값은 다시 18달러대로 올라서 미국의 석유업계는 도산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석유로 먹고살았던 소련이나 알제리, 베네수엘라, 멕시코는 못살렸다. 부통령 재직 중 임시 대통령을 맡은 적이 있었다. 그 이유는 레이건이 총에 맞고 인근 병원에서 대수술을 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때 레이건이 죽었다면 부시는 41대 대통령으로 더 일찍 활동하게 되고, 그가 재임하던 때는 42대 대통령이 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승계받아도 그가 대통령이였던 시절은 대통령으로 활동이 가능하나, 불출마했을 가능성이 높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